메스를 내려놓고 모두가 퇴근한 빈 진료실. 홀로 남아 조용히 이번 달 매출 장부와 결제 내역을 들여다볼 때면, 많은 원장님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수의대 시절, 우리는 생명을 살리고 아픈 동물을 치료하는 고결한 사명감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동물병원의 문을 열고 마주한 현실은 치열한 경쟁, 매달 돌아오는 임대료, 그리고 우리 병원을 믿고 따라주는 테크니션들의 인건비라는 무거운 ‘숫자’들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이윤을 내어 병원을 유지해야 하는 경영자로서의 나. 그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남모를 죄책감이나 딜레마에 빠지곤 합니다.
돈을 번다는 것, 사명감에 반하는 일일까요?
우선 이 마음의 짐부터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동물병원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수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입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옛말처럼, 동물병원의 재무가 튼튼해야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한 고가의 의료 장비를 도입할 수도 있고, 동물병원을 더욱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원장님의 곁에서 묵묵히 예약과 응대를 챙기는 리셉션 매니저, 진료를 보조하는 테크니션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줄 수 있습니다. 잦은 직원 교체 없이 숙련된 팀워크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결국 반려동물 보호자와 환자에게 최고의 수의료 서비스로 돌아가게 됩니다.
'수가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브랜드 가치'를 입증할 때
하지만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객단가를 높이거나 진료비를 무리하게 청구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보호자들은 비싸서 결제를 망설이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지불하는 이 비용이, 우리 아이를 위한 합당한 가치(전문성, 신뢰, 정성)로 돌아오는가?'를 따집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마케팅이자 CX(고객 경험) 디자인입니다. 우리 동물병원이 제공하는 수준 높은 진료가 반려동물 보호자와 환자에게 온전히 가치 있게 전달되려면, 문을 열고 들어와 대기하고, 수납을 마치고 나가는 모든 과정이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많은 동물병원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파워링크를 걸고 블로그 상위노출을 하지만, 정작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와 수납하고 나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힘들게 유치한 신환을 놓칩니다.
원장님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 마세요. 동물병원 내에 일관된 '기준'을 세우고 시스템화해야 합니다. 마케팅 경험이 부족한 테크니션이나 매니저도 '우리 동물병원만의 응대 톤'과 '콘텐츠 스타일'을 이해하고 있다면, 진료 외적인 부분에서 원장님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수의사로서의 진정성을 떳떳하게 증명하고, 그에 맞는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 그것이 원장님과 스탭 모두가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 현장에서 바로 적용해보는 3가지 팁, 이럴 땐 이렇게 해보세요!
1. 영수증 내역 대신 '가치'를 설명해 보세요.
보호자가 느끼는 비용 저항감을 낮추는 무기는 '설득'이 아니라 '설명'입니다. 수납 시 "오늘 총 15만 원입니다"라고 끝내지 마세요. 데스크 스탭이 오늘 어떤 검사가 왜 진행되었는지, 처치 후 집에서 어떻게 돌봐주어야 하는지 한 번 더 짚어주어야 합니다. 잘 정리된 '질환별 홈케어 안내문(종이 혹은 PDF)'을 건네보세요. 이 작은 디테일이 보호자에게 '돈이 아깝지 않은 전문적인 동물병원'이라는 신뢰를 심어주고, 다음번 고가의 검사나 수술 시 망설임 없는 진료 동의로 이어집니다.
2. 우리 동물병원만의 '한 줄 응대 가이드'를 만들어 보세요.
직원마다 전화 응대나 예약 안내 방식이 다르면 보호자는 동물병원의 전문성을 낮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이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우리 병원은 첫인사 때 반드시 이 멘트를 쓴다", "리뷰 댓글은 이런 따뜻한 말투로 통일한다" 같은 아주 작은 기준 하나를 팀원들과 함께 정해 보세요. 기준이 명확해지면 직원들도 훨씬 자신감 있게 보호자를 응대할 수 있습니다. 잘 정립된 응대 톤앤매너는 문의 전화를 실제 내원으로 연결하는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확실한 마케팅입니다.
3. 한 달에 한 번, 스탭들과 '병원의 방향성'을 나누어 보세요.
경영과 마케팅의 짐을 혼자 짊어지지 마세요. 정기적인 티타임이나 짧은 미팅을 통해 "우리 동물병원은 앞으로 노령견 치과 진료에 더 힘을 쏟고 싶다"와 같은 목표를 테크니션, 리셉션 매니저와 공유해 보세요. 원장님의 진료 철학을 스탭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병원 내부에서부터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마케팅이 시작됩니다.